2020년 8월 9일 (일)
소통과 나눔
학교 가는 길
산 하나를 넘어서면 공책 크기만큼의 학교가...

버스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교복차림이 싱그럽다. 똑 같은 교복으로도 제각기 멋을 낸 차림새와 머리모양, 신발, 책가방만 보아도 등굣길의 개성은 한껏 고조된다. 숨을 쉬기에도 곤란하리만큼 단추도 잠기지 않게 줄여 입은 교복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4~50분쯤은 족히 걸어서 다니던 등굣길을 이제는 냉난방을 완벽하게 갖춘 승용차와 버스 혹은 택시가 대신한다. 발이 빠지는 진흙길을 걸을 염려도 없고, 오래 걷거나 춥거나 더울 일도 없으니 교복이 몸에 꼭 맞거나 길이가 좀 짧아도 과히 불편함이 없는 시절이다.

요즘의 교복은 어지간한 몸놀림을 따라 늘어나기도 한다. 그만큼 신축성이 좋아졌다. 예전처럼 촌스러울 리 없는 세련된 교복차림은 등굣길마저 현대식으로 바꾸어놓았다. 반대로 생각하면, 등굣길을 따라 교복의 모양이 변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에게는 유전자의 변형이 가져오는 진화가 있듯이, 교복차림에서 오는 등굣길의 변화 또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내가 중학교 때 입었던 넓은 맞주름 치마와 넉넉하고도 펑퍼짐한 재킷의 교복은 오래 걷거나 산길을 오르내리기에는 더 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신축성이 없어서 크게 입어야만 팔 다리의 커다란 움직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그때는 크게 입는 교복이 자랑이었다. 새 옷일수록 크고, 대물림한 옷은 대부분 많이 닳았거나 제 몸보다 작아서 불편하였다. 모양새가 썩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헐렁한 새 교복을 빳빳하게 다려서 한껏 멋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 시간도 채 견디지 못하고 이내 후줄근해져 버리곤 하였다. 옷감의 재질도 면 보다는 화학섬유가 많이 섞여 웬만해서는 잘 젖지도 않았다. 색깔도 그리 밝은 편이 아니어서 그냥 툭툭 털어내면 그나마 새 옷처럼 말끔하게 보이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었다.

나는 70년대에 중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에는 읍내에 살던 아이들도 버스를 타는 것이 일상적이지 않을 때였다. 더욱이 내가 살던 곳은 학교와 많이 떨어져 있어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했다. 다행히도 산 하나를 넘어서면 멀리서 공책 크기만큼의 학교가 보이는 지름길이 있었다. 조금 힘이 들긴 하였지만 걸어서 40분이 족히 걸리는 숲속 등굣길을 선택하였다. 시간도 돈도 많이 절약되는 방법이었다.

사계절 변함없이 아침 일곱 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면 학교로 향했다. 지금처럼 자율학습이 있거나 0교시 수업을 할 때도 아니었지만, 솔숲 사이로 밝아오는 새벽의 등굣길은 하루를 시작하는 의미 그 이상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그 길은 언제나 처음 가는 길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곳에 가면 새하얀 순수와 맑은 감성이 운무처럼 피어올랐다. 꽃눈처럼 터지는 친구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메아리도 있었다. 이름 모를 새소리와 맑은 바람이 꽃잎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숲은 어느 덧 마음을 비우며 수묵화를 준비한다.

나는 새벽 달빛이 조금 남아있는 등굣길을 무척 좋아하였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가장 먼저 걷는 것이 색다르고 좋았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속눈썹에 내려앉는 새벽이슬을 지나치도록 좋아했다. 그것이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등굣길에서 시집을 탐독하면서 부터였다. 상쾌한 숲이 지니는 묘한 매력은 등굣길의 여중생에게 문학의 중독성을 지니게 하였다.

신작로를 따라 편안히 등교할 수 있는 매끈한 길도 있었지만, 두어 번 그 길로 가보고는 걷는 길이 밋밋하여 다시는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빨간 황토먼지를 마시며 걸어도, 산에서 내려오는 물 때문에 진흙탕에 발이 빠져도, 가파른 언덕과 고라니와 토끼와 꿩이 있는 숲속 길을 고집하였다. 그 길에는 하얗게 웃음을 쏟아내던 조팝꽃, 깍쟁이처럼 새침했던 패랭이꽃, 포근한 솜털 속에 자줏빛이 곱던 할미꽃, 노오란 달을 좋아하는 달맞이꽃, 교실까지 따라오던 들국화와 쑥부쟁이의 향기, 꽃반지를 만들며 네 잎 클로버를 찾던 토끼풀 꽃이 지천으로 피고 또 지곤 하였다.

아침 일찍 숲속에서 만나는 산딸기의 유혹이 코끝에 닿을 때면 향기만으로도 무한히 행복하였다. 황토밭에 발이 빠지며 돌배를 따먹고, 개암나무 열매를 잔뜩 따서 넉넉한 교복치마를 펼쳐 다람쥐를 끌어안기도 하였다. 어쩌다 꿈틀거리는 뱀이라도 볼라치면 걸음아 날 살려라 냅다 달음질을 쳐도 마냥 신나는 일들이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작은 산언덕을 두 개나 넘어선다. 공책만 했던 학교가 점점 크게 가까이 다가온다. 아침이 서서히 눈을 뜬다. 동쪽으로 문을 낸 동그란 유리창에도 살구 빛 아침기운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어느덧, 교복의 축축함도 속눈썹의 물기도 보송보송하게 기지개를 켠다.

아, 따뜻했던 날들…….
웃음소리 해맑다.

○ 기 고 : 하현숙
               62년생으로 파주에서 태어나 현재 문산에 거주하고 있다. 수필가. 프리랜서, 종합문예지 계간『뿌리』
               주간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파주 곳곳을 찾아다니며 싱싱뉴스 시민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중에 있다.

작성일 : 2009-12-20 조회수 : 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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