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3일 (월)
소통과 나눔
고향은 만들고 가꾸는 것
2003년 연말에 파주로 이사 왔습니다. 1994년부터 발상해서 기획되고 있는 예술마을 헤이리로 입주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3년이 되어 가는데, 이제 누구에게나 “나는 파주사람이오”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우리 출판사(한길사)는 이보다 1년 더 전에 출판도시로 이사 왔습니다. 출판사로서는 맨 먼저 사옥을 지어 출판도시에 입주한 것인데, 출판도시 프로젝트의 기획과 건설에 앞장서 온 나로서는 나부터 입주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처음이라 불편함도 많았지만, 약간의 불편함이 때로는 우리들의 의식과 행동을 건강하게 해주는 듯도 합니다.
올해는 우리 출판사가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인데, 우리 출판사는 이곳에 이전해오기 전에 몇 군데를 옮겨 다녔지만 이제 출판도시는 우리 출판사의 변함없는 근거 또는 고향이 되기에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출판문화·출판산업의 이상도시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파주는 역사적으로 보나 지리적으로 보나 명실공히 우리 국가민족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파주에서의 역사가 한반도의 역사인 것이고, 다시 파주에서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고 있지 않습니까. 헤이리의 토목공사 착공식 때 강원룡 목사님이 오셔서 서명록에 ‘신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고 적은 바 있지만, 새로운 우리들의 아시아시대를 펼치는 출발점이 파주의 통일동산이라고 나는 확신을 갖고 말합니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분단시대가 해결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말합니다. 머지않아 개성에 점심 먹으러 갈 것이라고. 이런저런 상황을 대처해 나가면서 역사는 진전되는 것입니다. 분단의 현장인 우리 파주는 분단의 역사와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역사건설의 현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파주에서 ‘새로운 고향 만들기’를 지금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 낙동강변 밀양이 나의 원래 고향이지만, 이제 파주는 나의 삶과 나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제2의 고향입니다. 출판은 나의 생애의 가치이자 내가 가야할 길입니다. 세계의 출판인들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주목하고 부러워하는 책의 도시에서 책의 문화를 한껏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나의 책 만드는 일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다른 장르의 문화·예술과 더불어, 새로문 문화·예술의 시대를 견인해보고자 하는 헤이리 운동을 이곳 파주에서 펼칠 수 있는 보람과 행복이 나에게 있습니다.
파주라는 이름도 좋지만 파주의 옛 이름인 파평도 참 좋습니다. 비산비야가 광활하고, 장대한 한강과 임진강의 미학과 위용이 절정을 이루는 파주·파평에서 새로운 시대의 화두인 문화와 예술을 우리 함께 손잡고 창출해내는 긍지가 나에게 있습니다.
이제 문화와 예술의 시대입니다. 문화와 예술로 경제와 정치의 능력과 수준과 용량을 키워낼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파주를 문화와 예술의 새로운 메카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단으로 잘 보존된 자연이 새로운 문화예술의 시대를 더욱 확실하게 해주는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지금 세계는 문화예술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발상과 기획으로 문화예술은 선진의 세계인들을 경악하게 하고 그들을 운집시키는 프로젝트가 세계의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창조적인 발상과 그것을 구현하는 실천력이 조직화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행주대교를 지나 우리 파주로 달리는 자유로에서 만나는 한강의 풍경이란 참으로 경외롭습니다. 노을이 질 때 자유로를 달리는 즐거움이란 엄청나지 않습니까.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 통일동산 앞에 펼쳐지는 저 장대한 풍경이란 단연 압권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출판도시를 기획하면서 우리는 자유로를 달리곤 했는데, 자유로 밖으로 자유로와 나란히 모노레일을 건설한다면 엄청난 관광상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노레일은 출판도시와 헤이리, 그리고 DMZ의 인문적인 문화예술 인프라와 통합되면서 세계의 명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강하류와 임진강 하류를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파주에 새로운 고향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창조적 발상을 갖고 있는 좋은 친구들을 모셔오는 일입니다. 이들은 곧 우리 파주를 우리 국가민족 공동체의 명실상부한 중심으로 일으켜 세우는 지혜와 이미지와 동력이 될 것입니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서 헤이리 하늘로 오가는 철새들이 장관입니다. 날아가면서 철새들이 나누는 대화는 싱그러운 음악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심성을 아름답게 해주는 음악입니다.
제2의 고향, 파주의 통일동산 헤이리에서 나는 나무와 꽃을 심습니다. 나무와 꽃들의 자태야말로 가장 문화적이고 가장 예술적입니다. 우리의 파주를 나무들이 무성하고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그런 고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고 했습니다만, 자연이 아름다운 파주, 문화와 예술의 고향에서 일하는 행복을 나는 누리고 있습니다. 고향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 김언호(도서출판 한길사 대표·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2008 IPA서울총회 집행위원장)
작성일 : 2006-12-7 조회수 : 9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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