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9일 (토)
소통과 나눔
장파리, 그곳엔 우리네 근대 문화가 숨 쉬고 있다
- 60~70년대 미군 클럽 ‘라스트 찬스’

새해를 맞으면 뭔가 기대감에 찬다. 새로운 ‘기회’를 얻은 느낌이랄까? 사람들은 항상 기회를 노린다. 바라는 것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라스트 찬스’로 향하는 마음이 그랬다. 우연히 알게 된 곳, 그래서 꼭 내 눈으로 가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내 생애 마지막 찬스를 얻게 될 것만 같아서.

파평면 장파리
장파리 가는 길

'라스트 찬스’는 파평면 장파리에 있다. 장파리,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곳. 기억 속의 그곳은 너무나 시골스러운, 인적 드믄, 별 볼 것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그 옛날 60~70년대 미군 클럽의 흥겨움이 숨 쉬는 곳, 라스트 찬스가 있었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들어가야 하는 미군들이 마지막으로 질펀하게 놀아볼 마음으로 ‘라스트 찬스’를 찾은 것이다.
60~70년대의 장파리는 당시 5천명의 유동인구가 활보하던 문화의 거리였다. 극장, 클럽, 다방, 나이트클럽이 대성황을 이루던 곳. 물론 지금은 그 시절을 떠올릴 수조차 없는 모습이지만 그때의 기억을 소환시킨 곳이 바로 라스트 찬스다. 2013년 우연히 화석정에 놀러왔다가 창고로 버려진 라스트 찬스를 발견한 설치미술가 윤상규 씨에 의해 2015년 봄, 그 모습을 되찾았다.

 
“이 곳에 들어선 순간,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생을 살고픈 마음에 사두었던 율곡리 집을 팔아 몽땅 투자하고선 내 손으로 하나씩 복원해 나가기 시작했지요.”
가능한 손을 대지 않는 선에서 원형 그대로 살리고자 무던히도 애썼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집트 풍의 조각과 그리스 신화 조각상들도 그때의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 솔직히 다 헐어버리고 다시 세우는 것이 더 쉬웠을 텐데….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라스트 찬스

실내조명은 꽤나 어둡다. 처음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 그래서 벽면의 조각상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지도 모르겠다. 소박한 테이블과 벽 쪽에 늘어선 소파가 꽤나 이국적이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자리한 것들이다. 앞쪽의 무대엔 드럼과 기타 등 악기가 즐비한데, 커다란 북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네 분들이나 원하는 이들을 위해 난타를 무료 강습하고 있단다. 중앙의 난로로 참 정겹다. 창가에 몇 권의 책과 작은 자전거 등의 소품,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의자와 바이올린 등 설치미술가인 윤대표의 작품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입구와 안쪽 벽면을 가득 메운 사진들. 60~70년대 장파리의 모습들이 그 안에 있다.

 

실내조명
벽면의 조각상
설치미술가인 윤대표의 작품
60~70년대 장파리의 모습

“제가 자료들을 꽤 많이 모아놨어요. 사진뿐 아니라 미군 병사의 러브스토리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도 많아요. 아시겠지만 ‘양공주’들의 애환도 있어요. 한번은 한 할머니가 저를 찾아와 입구에 있는 사진 속 아가씨가 자신이라면서 아들을 찾는다고 하더군요.”

 

미국에 가서 결혼도 하고 두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었지만 한국에 두고 온 아들에 대한 연민에 한국을 찾은 것이었는데 소득 없이 미국으로 돌아갔단다. 그런데 2년 뒤쯤 미국에 있는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녀의 부고 소식이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윤대표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이렇게 모은 것들을 언젠가는 정리해 책으로 발간할 거란다. ‘장파리 이야기’를 전하고픈 마음에.

자료들
사진과 옛날 모습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라스트 찬스에 대한, 장파리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이 참으로 깊다는 게 느껴졌다. 그는 장파리를 본 순간, 마을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무슨 매력? 아무리 생각해도 볼 것 없는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한 것을…. 기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윤대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 매력이란 건 보이는 사람에게 보이는 거예요. 저와 목적이 달라 보이지 않았을 뿐이죠. 전 이곳의 썰렁함에서 오아시스를 연상했어요. 스러져가는 건물에서 복고풍 영화세트장으로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가왕 조용필이 가스로서의 꿈을 이뤄간 곳이기 때문에 특화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해요. 문화 플랫폼은 지역별 ‘키워드’를 살리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영화세트장으로 활용하는 건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스트 찬스에 들어오기 전 둘러본 장파리의 도로 옆 건물들은 굳이 꾸미지 않아도 70년대 모습 그대로였다. 당시에 있던 소라다방이나 천주공소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켰고, 장파초 주변 벽화들과 전시된 옛 사진들은 그 당시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원조나 혜택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 것을 많이 잃기도 했다. 아픈 역사라도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하는 그는, 치부가 될지언정 그것을 새롭게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네 근대문화가 사라지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장파리에 자리를 잡으면서 참으로 맘 고생, 몸 고생 많았다. 지금의 라스트 찬스도 자금 사정으로 5년 전세 계약을 한 거라 기간이 불과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재계약도 불투명한 상태라 마음이 편치 않은 게 사실. 하지만 그는 지금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하루 종일 있어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있는가 하면, 하나둘씩 모여든 손님들이 어느덧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얘기 나누다가 악기도 연주하면서 서로 어울리기 때문이다.

 

영화세트장으로 활용
옛날 자료들

라스트 찬스는 24시간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 윤대표가 없어도 마음대로 커피를 타 마시고 가져온 술 한 잔을 기울일 수도 있다. 누가 뭐라는 사람 없어서 마음 내키면 연주를 하든지, 가만히 몇 시간이고 책을 읽다가 가도 된다. 그곳에선 뭐든 가능할 것만 같다. 묘한 마력이 끌어당긴다.
2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삶을 즐겼고, 타고난 미술적 재주로 먹고 살며 많은 이들과 교감을 나눠왔던 윤대표는 이제 ‘후배’들을 위해 나눠줄 때가 왔다고 말한다.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화려했던 ‘임진8경’을 찾는다거나 사라져간 우리네 문화 전통을 발굴해 그것을 재창출해서 후배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라스트 찬스 알리는 일에도 보다 열심을 다하겠다는 윤대표는 2월 중순이나 말경 ‘고고페스티벌’을 벌일 계획이다. 지난 4년의 노력, 욕구를 다 채우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배고픔은 해소됐다는 그에겐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히딩크의 말이 맞아떨어지는 듯.

 

취재  : 전영숙 시민기자

작성일 : 2018-1-30 조회수 : 864
  • 목록으로
  • 프린트
  • 트위터
  • 페이스북

컨텐츠 만족도 조사

홈페이지내의 서비스향상을 위한 시민 여러분들의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등록